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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일보 / 짙은 어둠 위에 치유의 빛 새기는 ‘드러머’ 김도엽

관리자
2022-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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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곡 수피아미술관서 '야경 시리즈' 15점 선봬

재즈 드러머인 김도엽 화가가 칠곡군 가산면 학하리 수피아미술관에서 ‘치유의 공간’을 테마로 전시하고 있는 자신의 작품 ‘서울의 야경’ 앞에서 활짝 웃고 있다. 박영제 기자
250호짜리 유화는 끈적끈적하고 질퍽했다. 아차산의 최고봉인 해발 348m의 용마산에서 바라본 서울의 야경은 잿빛 어둠이 깔렸다. 어둠을 더 많이 새길수록 빛의 향연은 더 찬란했다. 재즈 보컬이 의미 없는 음절로 흥얼거리는 ‘스캣’(Scat)이 떠올랐다. 즉흥적이었다.

칠곡군 가산면 학하리 수피아미술관에서 만난 그는 “내 그림의 특징은 그리면서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는 거다. 재즈 음악처럼 즉흥적으로 표현해내는 게 핵심”이라고 했다. 김도엽(58) 작가는 자신을 ‘뮤지션’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작가를 까다롭게 고르기로 유명한 임배원 수피아미술관 대표로부터 “김도엽의 야경은 예술성이 짙다”는 찬사를 받은 그는 “평생을 ‘재즈 드러머’로 살면서 경험한 굴곡진 인생을 화폭에 담았다”고 했다. 김 작가는 “미술학도로 시작했지만 살기 위해 붓 대신 스틱을 잡았기에 음악인이라고 말하는 게 예의”라면서 “음악만으로 채워지지 않는 공간을 결국 그림이 채웠다”고 털어놨다. 그는 가상의 도시도 그려내고, 도시가 품은 건물을 무너뜨리거나 흔들어버리는가 하면 어둠 위에 빛을 수놓기도 한다. 밤이 더 익숙한 ‘밴드’ 연주자로서 무대 위의 조명은 숙명과도 같았다. 그걸 야경 시리즈가 품었다. 김 작가는 “어둠을 더 많이 깔아줘야 밝은 게 더 빛이 나듯이 세상살이에서도 스타의 이면에는 더 많은 조력자의 발버둥이 있었다”면서 “가까이서 보면 밝음이 더 강조되지만 멀리서 보면 어둠과 섞인 밝음이 더 찬란해진다”고 야경 시리즈의 매력을 이야기했다.


애플재즈오케스트라 재즈 드러머로 연주를 하고 있는 김도엽 작가. 김도엽 작가 제공.
나이트클럽에서 ‘드러머’로서 첫발을 디딘 부산을 비롯해 김영삼 대통령 앞에서 연주할 정도로 잘 나갔던 서울, 현재 터전인 대구, 음악인이자 화가로서 동경의 대상이었던 미국 뉴욕,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야경을 차례로 그려냈다. 김 작가는 “기성 화가도 엄두를 내지 못하는 수피아미술관에서 전시를 위해 8개월 넘게 매일 숨을 헐떡이며 사자후를 토했다”면서 “평생의 한을 풀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항공사 승무원을 거쳐 외국계 기업에서 일할 정도로 잘 자란 29살의 외동딸이 전시장을 직접 찾아 엄지를 들어 올릴 때 한없이 뭉클했다”고 고백했다.

홍영숙 수피아미술관 관장은 “자신의 그림을 모두 불태워버린 김 작가를 두고 다른 작가들이 칭찬한 특이한 케이스”라고 귀띔했다. 10여 년 병석에 누웠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유품을 정리하던 어머니가 불에 타버린 사람, 해골, 백발의 할머니가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담은 자신의 그림을 보고 “꿈에 나올까 무섭다”고 했다. 김 작가는 한 트럭 분량의 그림을 경주시 안강읍 냇가에서 불태워버렸다. 김 작가는 “장남으로서 정착하지 못하고 평생을 음악 한다고 정처 없이 떠돈 자체가 죄스러웠던 데다 어머니가 싫어하는 그림을 그대로 둘 순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후 탄생한 작품이 ‘야경 시리즈’다.

미술학원을 차리고 개인전을 준비하다 교통사고를 내 풍비박산을 경험한 김도엽 작가는 2010년 오랜 연주활동으로 어깨 석회화로 고생했고, 2016년에는 고관절 통증으로 스틱마저 놔야 했었다.

자신의 이름을 내건 밴드를 비롯해 백진우 대구예술대 실용예술과 교수가 창단한 밴드 등에서 연주활동을 이어가면서 18년째 후진도 양성하고 있는 김도엽 작가는 “늘 마음속에 두고도 열심히 하지 못했던 ‘그림’에 더 열정을 쏟고 싶다”며 “야경 시리즈만 고집하지 않고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다. 앞으로 내 그림이 어떻게 변모될지는 나도 짐작이 가지 않는다”고 했다. 김도엽 작가는 30호부터 250호에 이르는 ‘야경 시리즈’ 15점을 수피아미술관에서 내년 2월 2일까지 선보인다.

배준수 기자 l baepro@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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